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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아름다운 동거-가족 관계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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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아름다운 동거-가족 관계


자식 내외와 친구처럼 살지만 의지하지 않아
장수한 사람은 가족관계도 화목했다. 또한 큰며느리가 모실 때 장수한 사례가 많은 것도 주목을 끌었다.

박상철(朴相哲·53) 서울대 의대 교수의 체력과학노화연구소와 조선일보 취재팀이 우리나라 백세인 49명(남자 8명·여자 41명)을 인터뷰한 결과, 백세인의 3분의 2인 67.5%(33명)가 며느리와 생활하고 있었다. 남편과 사별한 며느리로부터 부양받고 있는 백세인도 9명이나 됐다. 부양자는 모두 큰며느리인 것으로 나타났다. 홀로 사는 백세인은 12.2%(6명)였고 딸이 모시는 경우는 8.2%(4명)였다. 연구팀은 “아들, 특히 장남이 부모를 모시는 전통적 가족 관계 때문에 큰며느리가 백세인을 봉양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고 설명했다. 며느리와의 동거 기간은 최소 11년에서 최고 64년까지로 평균 42.71년이었다. 백세인 42명을 대상으로 부양자와의 관계를 조사한 결과, 73.8%가 “보통 이상으로 좋다”고 대답했다. 연구팀은 “백세인들이 가질 수 있는 자식에 대한 의존성 때문에 가족 관계가 좋지 않을 것이란 추측이 선입견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 친구처럼 의지하는 고부(姑婦)

오랜 세월을 서로 친구처럼 의지하는 고부(姑婦)는 함께 장수하고 있었다. 전남 곡성군의 이수경(101) 할머니를 64년째 모시는 큰며느리(80)는 “시어머니와 같이 사는 게 무엇이 힘드냐”고 반문했다. “내가 들일이라도 갔다 오면 어머니가 계시니까 집안이 든든해. 돌아가시면 허전할 거 같아. 그래서 내가 어머니한테 가끔 그래요. 돌아가셔도 나 무섬(무서움) 주지마.” 7년 전 큰아들이 사망한 이후 며느리와 둘이서 살고 있는 이 할머니는 “며느리 덕분에 내가 오래 산다”고 말했다.

“우휴 시집살이는, 말도 못해요. 책을 써도 몇 권을 써. 날마다 눈물이 나왔어. 새만 날아가도 내 욕 했냐고 야단치고…. 우리 시어머니가 얼마나 나를 미워하고, 구박했는지 몰라. 원통해 말을 못해. 그래도 늙으니까 미운 맘이 가버려(없어져 버려). 이젠 애정이 들어가. 요즘은 새참으로 라면도 끓이고 계란도 삶아서 갖다 드리면 ‘너 아니면 내가 누굴 보고 살것냐’며 손을 딱 잡기도 해.” 전남 보성군의 A할머니(102)의 큰며느리(78)는 “나이가 드니 ‘원수 같던’ 시어머니가 이젠 사랑스럽다”고 말했다. 최 할머니도 “3년 전부터 밥까지 떠먹이는 며느리가 세상에서 제일 편하다”며 며느리 손을 잡았다.

충북 청원군 이용분(102) 할머니의 큰며느리(86)는 2000년 이 할머니가 겨울 눈길에 넘어져 골반 뼈를 다칠 때까지 60년 이상 시어머니를 모셨다. 이 할머니는 슬하에 6남 3녀를 뒀지만 장남 집에서 살 것을 고집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큰며느리는 이 할머니를 60년 이상 봉양했다. 시어머니가 무서워 밥도 같이 못 먹었다는 큰며느리이지만, “아픈 게 나으면 다시 시어머니를 모시고 싶다”고 말한다. 현재 충북 제천의 양로원에 계시는 이 할머니는 다친 몸을 끌고 찾아오는 큰며느리를 만나면 손을 부여잡고 놓을 줄을 모른다.

그러나 100세가 넘은 시어머니는 70~80대 며느리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될 때도 있다. 전남 담양군 B(101) 할머니의 큰며느리(71)는 자신도 홀로 된 이후 30년 넘게 시어머니와 같은 방을 쓰다가 3년 전부터 독방을 쓰고 있다. “밤에 잘 때 저승사자가 와서 당신을 어머니인 줄 알고 잘못 데려 갈 수도 있다”는 점쟁이 말을 들은 뒤 “무서워서” 각방을 쓴다는 것이다. ‘죽는 순서가 바뀔지 모른다’는 생각은 노인의 장수를 자녀의 죽음과 연결시키는, 우리나라 특유의 문화적 해석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백세인 부양자들은 장수 노인에 대해 “자식을 잡아먹어서 오래 산다”는 부정적 해석과 “제 명을 채우지 못하고 먼저 간 자식의 명을 이어 살아주신다”는 긍정적 해석을 동시에 내놓았다.

이정화 농촌생활연구소 연구원은 “며느리가 모셔야 오래 산다는 인과관계는 성립하지 않지만, 가족관계가 원만한 백세인일수록 우울증 등에 걸리지 않으며 생활 만족도가 높았다”고 말했다.

◆ 당당하게 늙었다

전남 곡성군의 이판순(99) 할머니는 혼자 살지만 밭일을 할 만큼 정정하다. 부산에 사는 아들이 할머니를 모시려 해도 “아직 움직일 수 있는데 왜 자식에게 의존하느냐”며 고향을 떠나지 않는다. 대신 이 할머니의 집은 동네 노인들로 언제나 북적거린다. 이 할머니는 “자식에게 모든 걸 의지하려는 생각이 들면 죽을 때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 곡성군의 하현순(102) 할머니는 지금까지 안방을 쓰고 있다. 50년 동안 할머니를 모신 며느리(70)는 “내 나이 일흔이고 며느리가 줄줄이지만 지금까지 어른 노릇 한 번 못해 봤다”며 “이젠 내 주장도 내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의 이달성(100) 할아버지는 97년부터 외아들과 친척들이 주는 용돈을 모았다. 두 명의 부인과 한 집에서 평생 살아온 이 할아버지는 “우리 집엔 늙은이가 셋이라 장례 비용이 많이 들 것”이라며 한 푼 두 푼 저축했다고 한다. 그는 지난 8월 둘째 부인이 세상을 뜨자 500만원쯤 모은 돈을 장례비로 선뜻 내놓았다. 30년 동안 할아버지를 모신 큰며느리(52)는 “역시 집안의 어른이라 생각하는 게 다르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전남 보성군 김광산(101) 할머니를 모시는 둘째 딸(71)은 아들 없이 딸만 넷을 둔 할머니를 안타깝게 여긴다. “아들 없는 우리 어머니는 천(淺)하제. 불쌍해. 아들만 있어도 좀 나을 텐데….” 그러나 김 할머니의 딸은 방바닥에 대소변을 보는 어머니 수발을 3년째 들고 있다. 조기를 3일에 한 번씩 준비하고, 밥도 먹여주고, 세수도 해준다. 이번 연구에서 딸이 백세인을 모시는 4개의 사례는 모두 백세인들의 삶의 질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박성철 교수는 “현재 백세인들을 모시는 며느리들은 ‘시어머니가 상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신을 희생한 마지막 세대”라며 “부모 봉양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지고 초고령 노인이 급증하는 현실에서, 장수 노인을 모시는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사회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002-11-04 진성호기자 shjin@chosun.com)

2002-11-15 09: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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