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하나의 생명체라 할 수 있습니다. 생겨나기도 하고 변하기도 하고, 늙기도 하고 병들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새낱말은 아주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이미 있던 말끼리 합쳐져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이미 있던 말이 합해져서 새낱말이 만들어질 때에 일어나는 현상을 보면 흥미로운 것이 많습니다. '*암-개→암캐, *수-돼지→수퇘지' 들에서 발견되는 사실도 그런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암]과 [개]가 합쳐지고 [수]와 [돼지]가 합쳐지면 각각 [암개]가 되고 [수돼지]가 되어야 할텐데, [암캐]가 되고 [수퇘지]가 됩니다.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요?
'암, 수'의 옛형태는 각각 '암ㅎ, 수ㅎ'이었습니다. 끝에 [ㅎ]가 있었으므로 그 뒤에, '개, 강아지, 기와, 돼지, 닭, 병아리' 들이 합쳐지니 다음과 같이 실현된 것입니다.
(1)암ㅎ-개 → 암캐
암ㅎ-강아지 → 암캉아지
수ㅎ-돼지 → 수퇘지
수ㅎ-병아리 → 수평아리
이렇게 하여 새낱말 '암캐, 암캉아지, 암퇘지, 암평아리; 수캐, 수캉아지, 수퇘지, 수평아리' 들이 되었는데, 좀 유심히 살피면 이런 현상은 '암ㅎ, 수ㅎ' 뒤에 [ㄱ, ㄷ, ㅂ]로 시작되는 낱말이 올 때에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암, 수' 끝의 [ㅎ]가 뒤따르는 [ㄱ, ㄷ, ㅂ]와 어울려 각각 [ㅋ, ㅌ, ㅍ]가 된 것입니다. 그러한 보기를 더 들어 봅니다.
(2) ┌암컷 ┌암키와 ┌암탉 ┌암탕나귀 ┌암펄
└수컷 └수키와 └수탉 └수탕나귀 └수펄
[ㄱ, ㄷ, ㅂ] 이외의 소리로 시작되는 낱말이 뒤따를 때에는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3)은 '암ㅎ, 수ㅎ'가 [ㄲ, ㄴ, ㅅ]나 홀소리 앞에 놓인 보기입니다.
(3) ┌암꿩 ┌암놈 ┌암소 ┌암술 ┌암은행나무
└수꿩 └수놈 └수소 └수술 └수은행나무
'암'과 '수'는 언제나 이 형태대로 표기합니다. 그런데 예외가 있으니,「표준어 규정」(제7항)에서 '숫양, 숫염소, 숫쥐'를 표준으로 선택했습니다. 이는 [순냥], [순념소], [수쮜]를 각각 표준 발음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며, 그러므로 사이 ㅅ을 받친 것이지요. 특히 '수'와 '쥐'가 합쳐지는 경우는 '수ㅎ' 뒤에 [ㅈ]로 시작하는 낱말이 합쳐졌음에도 [수취]로 실현되는 일이 좀처럼 없는 듯합니다.「표준어 규정」에서는 이러한 현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머리-가락, 안-밖'이 각각 '머리카락, 안팎'이 되는 것도 '머리'와 '안'의 끝에 [ㅎ]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