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4 노인 복지행정, 대안은 없나
4일 광주시립 정신병원에 정신지체 장애인 A(50·여)씨가 인계됐다. 경찰이 전날 새벽 길거리에서 헤매던 A씨를 광주 북구청 당직실로 넘겼으나 A씨가 한사코 자기 가족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2일 저녁 광주 서구청에 말끔한 차림으로 들어선 B(75)씨도 신상을 함구해 행려자 보호시설로 보내졌다. 2000년 고령화시대를 맞은 대한민국. 고령화시대를 맞아 ‘고려장’이 부활한 것일까. 노인복지행정의 현실과 대안을 점검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의탁할 데 없는 노인들을 위해 가정봉사원 파견과 ‘무선페이징’ 보급 등의 사업을 펴고 있지만 그 수혜자는 적다. 이 때문에 노인복지행정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관련 예산 증액은 물론 도움을 필요로 하는 독거노인 실태를 먼저 체계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이 폭넓게 제기되고 있다.
6일 행정자치부와 보건복지부, 지방자치단체에 따르면 노인을 위한 대표적인 복지사업은 가정봉사원을 독거노인 집에 방문하도록 하는 ‘재가노인복지사업’이다. 1987년 한국노인복지회가 시범 실시한 이 사업은 92년부터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면서 본격화했다.
그러나 전국의 재가노인복지시설은 2003년말 기준 228개에 불과하고, 그나마 인구노령화로 골치를 앓고 있는 농촌보다 대도시에 편중돼 있다. 2003년말 현재 1만538명인 가정봉사원 가운데 실제 책임을 부여할 수 있는 유급봉사원은 7.2%(764명)뿐이고 나머지 92.8%는 무급으로, 시간이 날 때 보조역할을 하는 데 그치는 정도다. 이로 인해 가정봉사원 파견제도의 수혜자는 2003년말 현재 전체 기초생활수급 독거노인 20만6661명의 8.8%인 1만8133명에 머물렀다.
전남 순천시의 경우 지난해까지 유급봉사자 제도가 아예 없었다. 순천시는 올해부터 건강한 노인이 몸이 불편한 노인을 보살피는 이른바 ‘노(老)―노(老)사업’을 시행할 예정이나 예산이 7000만원에 불과해 실효성이 의문시된다. 이 지역에서 혜택을 입을 독거노인은 총 1800여명 가운데 240명에 그칠 전망이다. 재가노인복지사업이 올해부터 지방이양사업으로 전환되는 점은 우려를 더한다. 지역현안에 밀려 사업 자체가 위축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더욱 근본적 문제는 국가적 관심과 지원을 필요로 하는 독거노인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지자체는 1대1 면접조사 대신 서류로 지원대상을 파악하고 있다. 자녀는 있지만 도움을 주지 않아 생활이 어려운 독거노인들은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
또 독거노인이 위급상황에 처할 때 전화기나 목걸이에 설치된 비상버튼을 누르면 119구조대가 출동, 신속 대처하는 ‘무선페이징’사업도 예산부족으로 사실상 전시행정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행자부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무선페이징 기기를 무료로 받은 독거노인은 9만명으로, 보급대상자로 분류된 18만명의 50%에 불과하다. 무선페이징 기기는 계속 전원을 공급해줘야 하는데 전기료 때문에 전원을 차단하거나 심지어 기기의 철거를 요구하는 사례도 적지않다. 정부는 올해 농촌지역에 재가노인복지시설 50여개를 설립하고, 무선페이징 기기 2만3000대를 추가 보급할 예정이지만 구조적 대안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대안은 무엇일까. 한서대 김윤정(37·노인복지학) 교수는 95년 도입된 ‘노인의 집’ 확대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유럽과 북미, 일본의 경우 정부나 독지가가 소규모 주택을 제공하면 소수의 노인이 함께 살면서 정을 나누는 이 제도를 잘 활용하고 있다”며 “노인들이 대규모 수용시설에서는 오히려 고립되기 쉽기 때문에 소규모 공동주택인 ‘노인의 집’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과 한정란(41) 교수는 “고령화사회를 예고하는 경고음이 20여년 전부터 울렸는데도 이제서야 허겁지겁 대책 마련에 바쁜 것이 현실”이라며 “가정봉사원 제도처럼 다른 나라에서 시행되는 것을 일단 도입하고 보자는 식이 아니라 먼저 사회구성원 사이에 노인복지대책을 어떻게 펴나가야 할지 합의를 끌어내고 그 합의를 토대로 노인복지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계일보] 박찬준·박연직 기자
2005-02-14 13:53:10

